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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배우 판영진 ㆍ김운하를 아세요? [배국남의 직격탄]

[비즈엔터 배국남 기자]

▲영화배우 판영진(사진=뉴시스)

“예술 분야에서 ‘열정’이라는 것은 이성을 이깁니다.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의 꿈을 향하면서 여러분의 운명에 도달해야 합니다…여러분을 위해 새로운 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생 거절의 문’입니다…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모두는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나가서 꿈을 펼치세요. 그리고 항상 기억하세요.‘다음’이라는 말을요.”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도 명연설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5월 22일 뉴욕대 티시 예술대 졸업식 축사가 공허하게 다가옵니다. 안타까운 두 무명 배우 죽음 앞에서요.

죽는 순간까지 무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 사람은 고시원 쪽방에서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된 뒤에야 그들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바로 “20년을 버티어 온 일산 이 집 이젠 내주고 어디로. 저 잡풀은 잡풀이요. 저 소나무는 소나무요. 잡풀이 어찌 소나무가 되리오. 다만 혼신을 다한들 개체의 한계인 것”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남긴 채 6월 22일 자살한 배우 판영진(58)입니다. “얼마 전까지 여기 대학로에서 공연했고 다음 주면 다시 관객들을 만나야 하는데… 지금 형이 그곳이 아니고 여기 대학로에 있어야 하는데. 잘 가 형” 후배 연극인들의 오열 속에 6월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김운하(40)의 노제가 치러졌습니다. 그는 6월 19일 서울 성북구 한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고시원 직원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판영진은 1978년 배우로 데뷔한 이후 독립영화 ‘나비 두더지’등에 출연했고 김운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연극 ‘인간 동물원초’등에 나서며 연극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두 무명 배우뿐만이 아닙니다. 인디음악계에서 인정받은 1인 밴드‘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 이진원은 2010년 생활고를 겪다 뇌경색으로 숨졌지요.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습니다. 2011년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감독 겸 작가인 최고은이 서른두 살에 가난 때문에 갑상샘항진증을 치료받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2012년 25세의 신인 연기자 정아율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열아홉 이후로 쭉 혼자 책임지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내 방에서 세상의 무게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엄청난 공포가 밀려온다”라는 글을 남기고요. 2013년 배우 김수진, 2014년 배우 우봉식 등도 연기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오랜 무명 생활로 초래된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무명 연예인의 죽음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극배우 김운하 (출처=극단 신세계 페이스북 캡처)

이들 역시 드니로의 말처럼 연기와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매번‘거절’을 당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다음은 없었습니다. 오랜 무명생활과 생활고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잠식하고 끝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2012년)에 따르면, 예술인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은 100만 원 이하가 67%에 달했습니다. ‘청년 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2012년)에 의하면 음악가에게 매달 시기와 액수가 균일하게 들어오는 고정수입은 평균 69만 원이었고 월평균 소득 50만 원 이하 음악가도 38%나 됐습니다. 이 숫자들도 예술인의 힘든 처지를 드러내 주지만 무명 배우의 자살 등 안타까운 죽음 자체가 수많은 예술인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명백한 증좌입니다.

최고은이 숨질 때 아우성이었습니다. 더 이상 생활고가 열정과 재능 있는 예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요.‘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3년째 시행되고 있지만, 허점투성이고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만 합니다. 또한, 스타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스타독식 구조는 더욱 심화해 무명 연예인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일상이 됐습니다. 제도와 사회안전망의 문제 그리고 문화계의 양극화는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열정을 쏟는 이 땅의 많은 예술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오늘도 문화융성을 외치고 한류의 화려한 성과 전시에만 열을 올리고 있군요.

배국남 기자 knba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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