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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10년 만의 告解(고해)

[비즈엔터 이꽃들 기자]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

10년 만의 告解(고해) [정론]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

살면서 누구나 영화 속 한 장면에 놓일 때가 있다.

6년 전, 당시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던 ‘더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장에서 그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다와 재회했다. 창작뮤지컬 ‘페퍼민트’의 제작자와 주연배우로 뼈아픈 이별을 한 후 5년 만이었고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어색하게 화들짝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바다가 영화 대사처럼 외쳤다.

“최승자 시집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어요.” 그 한 마디로 바다와 나를 가로질렀던 현실적 시간과 상처가 단숨에 치유되고 서로 본질만 변함없이 애틋하게 남았다. 그렇게 생애 잊지 못할 영화 속 한 장면의 추억이 보태졌다.

바다와 나의 첫 만남도 그랬다. 새벽 1시 조깅을 하다가 동네 카페에 물 한잔 달라며 뛰어든 바다가 우연히 나와 동석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속내를 거침없이 보여주던 바다와 그날로 가족처럼 지냈다. 그때 대중 스타로서의 자아와 인간 최성희로서의 자아가 외롭게 충돌하던 소녀 바다에게 최승자의 시집을 권했다. 고독을 무기로 삼고 자신의 신체 부위마저 객관화해 시의 도구로 삼았던 최승자 시인의 시가 바다를 위로해 주리라 확신하면서.

그런데 내가 제작한 뮤지컬 ‘페퍼민트’에 바다가 출연하면서 우리 관계는 본의 아니게 비즈니스 관계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국에서 12억 제작비를 들인 대형 창작뮤지컬을 대중적 콘셉트로 제작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지금도 부족한 전문 연출가, 작곡가, 음악감독은 아예 없다시피 했고 배우와 스태프 인프라도 몹시 약했고 뮤지컬 전용 공연장도 없었던 때였다.

당시 최고 뮤지컬 스타 남경주씨와 최고의 아이돌 스타 바다를 캐스팅하고 삼각 구도 러브 스토리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시립뮤지컬단 단원이던 고영빈을 캐스팅해 원하는 이미지로 변신시키느라 남자 배우 스타일 잘 잡기로 소문난 하용수 선생에게 보내고 패션디자이너 이정우씨에게 고영빈을 위한 세련된 슈트 디자인 제작을 의뢰했다.

김무열도 김준현도 오종혁도 없던 그 시절, 품격 있는 몸을 지닌 고영빈은 그렇게 꽃미남 뮤지컬 스타의 원조로 거듭났다. 또 창작뮤지컬 제작 과정을 제대로 밟겠다고 공연 8개월 전 쇼케이스 공연을 하고 1년 가까이 작곡가와 협업 체제로 텍스트를 완성하는 등 제작의 전문성에 공을 들였으나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 풍토와 환경, 전문인력이 준비되지 않은 그때 상황에서는 모든 과정이 달걀로 바위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고 모든 스태프와 배우를 고생시켰고 생애 첫 뮤지컬을, 특히 창작이어서 선택했던 옹골찬 바다의 의지는 상처와 고통의 점철로 부서졌고 당연히 멘토 같던 언니는 악덕 제작자로 변신해 보였을 것이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으나 제작자는 빚더미에 상처가 유일한 보상인 창작뮤지컬 제작 후유증으로 꽤 오래 공연 시장을 떠나 있었던 나는 그때부터 바다와 또 참여한 모두에게 언젠가는 전문적이고 신나고 충족된 뮤지컬 작업을으로 보상해 줘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지니고 산다.

이후 바다는 꾸준히 뮤지컬 작업을 하고 있다. 창작뮤지컬에도 출연한다. 그런데 10년 전과 창작 제작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바다는 굳은살을 배듯 이 제작 환경을 이해하고 감싸안는 건 아닐까? 만약에 바다가 뮤지컬과의 인연을 라이선스 뮤지컬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윤호진 선생은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로 뉴욕 공연을 개척했을 때 떠안은 빚의 무게가 너무 커 호텔 창밖을 바라보며 뛰어내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땅에서 창작뮤지컬 작업을 한다는 건 여전히 슬픈 영화 같은 이별과 재회를 담보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이꽃들 기자 flowersle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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