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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과 프란치스코 교황, 이젠 피케티! 왜?[배국남의 직격탄]

[비즈엔터 배국남 기자]

▲영화 '명량', 프란치스코 교황, 토마 피케티 도서 '21세기 자본'(사진=뉴시스)

‘명량’과 프란치스코 교황, 이젠 피케티! 왜?[배국남의 직격탄]

이젠 피케티다. 언론뿐 아니다. 서점가에서도, 대학가에서도 아우성이다.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서도 화제와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피케티가 저술한 책의 엄청난 인기에 기대거나 반박하기 위한 책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올 들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것은 영화 ‘명량’과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그 뒤를 이어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 신드롬이 일고 있다. 피케티 열풍의 진원지는 물론 그가 지난해 저술한 ‘21세기 자본’이다. 출간 이후 ‘21세기 자본’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한국에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불어판, 영어판 등을 구해 읽으면서 화제와 논란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12일 한국어 번역본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3위에 오르는 등 사회과학 서적으로 이례적으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언론에선 ‘21세기 자본’은 ‘가장 많이 판매됐지만 가장 읽지 않는 책’이라며 호킹지수(Hawking Index, 독자가 실제로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를 측정하는 지수)까지 들이대며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역시 피케티 신드롬의 방증이다.

한 사회를 강타하는 열풍, 그것은 또 다른 우리의 얼굴이다. 신드롬은 우리 사회와 국민의 열망 혹은 반작용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열풍의 본질과 이면에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도 볼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병폐와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올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명량’ ‘프란치스코 교황’ 열풍 역시 마찬가지다.

‘명량’ 신드롬은 세월호 대참사를 둘러싸고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에서부터 관료, 정치지도자들의 행태와 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 부재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리사욕만을 탐하는 정치·경제지도자들의 행태, 무책임과 리더십 부재의 정부와 정치인에 대한 환멸은 공정무사, 솔선수범 그리고 희생으로 난제를 해결하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민심을 수습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열풍 역시 마찬가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머물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 내려와 가난한 자를 어루만지고 소외된 자의 발을 씻기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두 팔로 안는 삶을 행동으로 옮겼다. 또한, 국가, 종교, 인종, 체제를 초월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악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했다.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존재와 정신, 태도의 부재에서 솟구치는 국민의 갈망이 프란치스코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면 피케티 신드롬이 적시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지난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 박모(60)씨와 큰딸 김모(35)씨, 작은딸(32) 등 세 모녀가 목숨을 끊으며 70만원과 함께 지상에 남긴 마지막 메모에서 찾을 수 있다. 박모씨는 자살하면서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유서 같은 메모를 남겼다. 박씨의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숨지며 많은 빚을 남겼고 두 딸은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신용불량 상태였다. 60대 박씨가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죽기 한 달 전 박씨마저 다쳐 식당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무한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사회안전망의 부실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다. 2014년 대한민국은 인구 20%의 부와 행복을 위해 나머지 80%의 빈곤과 비참을 강제하는 ‘20대 80 사회’, 아니 ‘1%의 탐욕 그리고 99%의 분노’로 대변되는 1대 99의 양극화가 악화되고 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자본이 돈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앞질러 양극화와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해결책으로 상위 계층에 대한 강력한 증세를 제시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피케티의 비판이 미국 경제학자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한국 경제학자들에게도 그대로 비판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학이나 순수이론에 과도한 집착, 인접 학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지적 오만, 자신을 기득권층과 동일시하는 보수성향 등 이 모든 것이 미국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한국 경제학자들에게 그대로 들어맞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는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비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배국남 기자 knba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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