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비즈엔터

재벌 2세가 ‘지․옥․고’여자를 사랑한다고? [배국남의 직격탄]

[비즈엔터 배국남 기자]

▲재벌 2세와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상류사회'(사진='상류사회'캡처)

“좀 더 빛을, 빛을”서른이 안 된 광자는 햇빛 세상에 살기 바랐지만, 가난한 고아라는 처지로 인해 그녀의 삶은 늘 습하고 외진 음지, 반지하 월세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모두에 공평한 햇빛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광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요즘 관객과 만나고 있는 연극 ‘햇빛샤워’다. ‘나는 위로 망해서 좋구나/여기가 우주 끝/…임시로 태어난 비정규직 공간에서/ 인생은 나를 소비한다/ 소주 한 병의 묽은 영광/가난하게 취한 자들은 방언에 익숙하다/…옥탑, 지붕 위에 탑을 세운 여기가 자본사회의 미륵 도량/ 나는 기도도 없이 망해서 좋구나’ 작가 서해성의 시 ‘옥탑방에서’다. 일용직 노무자 또는 유흥업소의 종업원들이 살면서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기에 서로를 못 본척한다. 살고 있지만, 유령으로 살아간다. 박민규의 소설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의 고시원 풍경이다. 김애란의 ‘노크하지 않는 집’, 김미월의 ‘서울동굴가이드’를 비롯한 소설, 시와 연극 속에 드러난 반지하방,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에는 한 평 남짓의 공간에 사는 현실의 고단함, 깊은 절망, 고뇌, 생존의 위협이 짙게 배어 있다.

연극과 시, 소설뿐이랴. 지난 2002년 5월 24일 대선후보 방송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이회창 후보는 “옥탑방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는 한 패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답해 서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후보가 ‘옥탑방’도 모르냐는 비판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반)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의 첫 자를 따 ‘지․옥․고’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까. 세 곳의 주거시설이 ‘지옥의 고통’같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1인당 최저주거기준 13.86㎡(약 4.2평) 이하에 사는 사람을 ‘주거 빈곤자’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1~2평 남짓의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최악의 주거 빈곤자에 속한다.

하지만 주거 시설의 고통과 생계 위협 등이 거세된 꿈같은‘지‧옥‧고’가 있다. 현실의 고단함 대신 가난한 여성을 사랑하는 재벌 2세의 지고지순함이 넘쳐난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불행 대신 행복이, 절망 대신 희망이, 분노 대신 사랑이 넘실대는 곳이다.

요즘 방송되는 드라마 SBS‘상류사회’다. 재벌 2세 창수(박형식)는 어머니의 극렬 반대에도 옥탑방에 사는 지이(임지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상류사회’속 옥탑방은 재벌 2세의 순수한 사랑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상류사회’뿐 아니다. 수많은 드라마 속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은 늘 그렇다. ‘파리의 연인’에서도, ‘보스를 지켜라’에서도. 수많은 드라마가 모범답안처럼 옥탑방을 가난한 여성 혹은 남성이 재벌 2세를 만나 신분 상승의 에스컬레이터 타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지하나 고시원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사진=SBS제공)

수많은 드라마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재벌 2세의 절절한 사랑이 펼치는 지‧옥‧고에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옥탑방, 그리고 곰팡이와 공존하며 비, 눈 내릴 때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반지하방, 그리고 유령처럼 살아야하는 고시원의 현실의 그림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 젊은 여성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아무리 사랑을 해도 옥탑방에 사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한 말에 느꼈을 수많은 사람의 열패감은 찾을 수 없다. 드라마 속 지‧옥‧고는 절망과 고뇌, 생존의 위협이 거세된 평생 가야 단 한 번도 스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재벌 2세들이 계급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펼치는 판타지만 가득하다.

드라마 같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수용자의 인식을 디자인한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묘사되는 상(像)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미디어학자 조지 거브너(Geroge Gerbner)는 TV를 많이 시청하는 사람은 머릿속의 현실 세계가 TV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배양효과 이론(Cultivation Theory)을 주장한 바 있다. 드라마 속 지‧옥‧고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획일적으로 드러내는 지‧옥‧고는 현실의 그것이 아니다. 이룰 수 없는 판타지다. 그런데도 드라마 속에서 철저히 왜곡한 지‧옥‧고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드라마 속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사실이냐고? “‘멋지고 풍광 좋은 옥탑방 하나 소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네요.”최근 만난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이다.

배국남 기자 knbae@etoday.co.kr
저작권자 © 비즈엔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bizenter.co.kr

실시간 관심기사

댓글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