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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강타한 ‘미생’ 신드롬이 남긴 것은? [배국남의 대중문화 읽기]

[비즈엔터 배국남 기자]

▲tvN 드라마 '미생', 웹툰 '미생'

2014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생’신드롬의 원인과 파장은?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장그래의 독백이 흐른다. 지난 2개월동안 안방을 뜨겁게 달궜던 tvN 드라마 ‘미생’이 12월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드라마 ‘미생’은 끝났지만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생’신드롬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호선 지하철 30대 초반의 여성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웹툰‘미생’을 보고 있다. 서울 동덕여대 앞 한 카페, 여대생들이 방송된 드라마 ‘미생’의 남자 주연 임시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웹툰으로 ‘미생(未生)’을 봤고 드라마‘미생’시청하고 있다는 40대 직장인 김모씨(43)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나와 만화‘미생’9권을 구입했다. 서울 여의도 한 맥주집에선 30~40대 남자 직장인들이 일 이야기를 하면서 드라마 ‘미생’을 화제에 올린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뿐만 아니다. 농사를 하는 농부도, 수산업에 종사하는 어부도, 중소도시의 자영업자도 ‘미생’의 열기 대열에 빠지지 않는다.

요즘 대한민국이‘미생’신드롬에 빠졌다. 요즘 ‘미생’을 보거나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럴 만 하다. 2012년 1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인터넷 포털 다음을 통해 연재된 웹툰‘미생’은 누적 조회수가 11억뷰를 기록했다. 지금도 여전히 반응이 뜨겁고 댓글이 달리는 등 관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어 2012년 9월 1권을 시작으로 2013년 9권으로 완간된 만화책‘미생’은 지난 10월 판매량이 150만부를 돌파했다. 올해는 출판시장 불황이 깊어져 등장이 힘들 것 같다는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밀리언셀러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10월 17일부터 첫 방송한 드라마 tvN ‘미생’은 케이블 방송임에도 8.4%를 기록하며 지난 12월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드라마 ‘미생’은 시청률로는 포착할 수 없는 체감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 대중매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백건씩 ‘미생’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 전문가나 일반인은 2014년 올 한해 대중문화의 하나의 사건이자 키워드는 단연 ‘미생’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생’은 이제 가치 있는 사회적 담론이 되고 의미 있는 문화적 신드롬이 되고 있다.

직장과 직장인을 다룬 드라마나 만화, 웹툰은 많았다. 그런데 ‘미생’처럼 눈에서, 입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느끼는 공감의 강도가 센 작품은 없었다. 왜 ‘미생’은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일까.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미생’신드롬의 진앙지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다. ‘미생’은 바둑이 전부였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입단이 좌절된 뒤 우여곡절 끝에 인턴을 거쳐 비정규직으로 종합상사에 입사해 전개하는 직장생활을 중심으로 직장인의 팍팍한 삶과 생활 그리고 그들의 애환을 농밀하고 현실감 있게 그리고 바둑에 빗대어 잘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막장적 요소와 멜로 드라마로 변질되는 직장인 드라마가 아닌 원작의 의도와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리면서 영상의 강점을 드러낸 드라마 ‘미생’은 웹툰을 접했거나 읽지 못한 사람들의 문양 다른 관심을 촉발시키며 ‘미생’신드롬을 더욱 고조시켰다.

‘미생’신드롬의 가장 큰 원동력은 웹툰과 드라마가 창출한 공감의 힘이다. “고민 끝에 무수한 샐러리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마치 핀셋으로 끄집어내듯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1%가 아닌 99% 다수의 가치가 수면 위로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미생’의 윤태호 작가 말이다. “미생’은 나에게 큰 도전적인 과제였다. 처음 원작자 윤태호 선생님을 찾아가 직장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원작의 리얼리티를 잘 살리고 직장인의 실제를 통한 애환을 드러낼 수 있는 다큐 드라마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 드라마 ‘미생’의 김원석PD의 각오였다.

윤태호 작가와 김원석PD의 다짐은 생존전쟁터로 변한 직장에서 밟고 밟히며 고단하고 팍팍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 정규직에 차별받는 비정규직, 계약직, 인턴들, 사내 정치와 실세에 실력은 뒷전이 돼버리고 승진에서, 인사에서 물먹는 회사원들, 뛰어난 업무실력에도 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유리벽에 차단돼 버린 여성 직장인들, 육아와 가사 그리고 직장일을 버티어내는 고단한 워킹맘들 속에 오롯이 살아났다.

‘미생’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어느 사이 우리의 직장으로 환치되고 실력이 있음에도 실세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오 과장, 인턴과 계약직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할 게 죽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며 땀 흘리는 장그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대안이 없으면 그냥 버텨라. 그게 바로 사는 거다” “빽도 없는 새끼, 여기 왔어. 새파란 신입 앞에 당할래? 아니면 옥상으로 갈래?”…극중 인물들의 대사와 모습은 자존심은 출근과 함께 주머니에 넣고 힘겹게 하루를 버티고, 승진은 실력이 아닌 인맥과 로비에 밀려나며 좌절하고, 여성의 능력은 남성이라는 견고한 유령 앞에 무시되지만 퇴근 때 소주 한잔으로 고단함과 좌절을 털어내는 이 땅의 직장인들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작품 속 갑(회사)의 전쟁터에 던져진 을들(직장인)의 고군분투는 어느 사이 나의 모습과 비교되고 TV화면 밖 현실의 미생들은 드라마 속 미생들과 동일시된다.

이 때문에 시청자나 독자, 네티즌이“가슴 먹먹하다.” “눈물 난다.”“ 안쓰러워 헛기침만 한다.” “가슴속에서 ‘어! 나잖아’라는 공감이 터져 나온다” “나의 아버지,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내 딸이 저렇구나”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과 동일시가 2014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생’ 신드롬의 이유다.

▲윤태호 만화 작가의 단행본 '미생', 드라마 스틸컷

직장인만 ‘미생’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미생’에는 취업 준비생, 농부, 어부, 알바생 등 이 땅의 을들, 소시민들 즉 미생들의 존재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미생’은 직장인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고달픈 현실 속에서 각자의 의미와 목표를 향해 묵묵히 생활하는 이 땅의 미생들의 삶을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미생’은 직장인을 넘어 대중의 폭발적인 신드롬으로 확산된 것이다.

‘미생’의 인기는 직장인의 고달픈 현실과 미생의 비참함만을 보여주는데 멈추지 않고 삶의 가치와 방향 그리고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한 몫 한다. “길은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는 ‘미생’대사에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살고 있지 않다고 말 해주고 싶었다.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아가 성취되는 것이다”라는 윤태호 작가의 언급에서 드러나듯 ‘미생’에는 우리사회에서 바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인정받고, 우리의 직장에서 실력 있고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대우받는 대중의 이상적인 바람과 휴머니즘이 짙게 배어 있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기자간담회에서 김원석PD는 “‘미생’이 사람들의 마음을 훅 끌어당기는 지점이 있었다면, 바로 외롭고 우울한 분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을 비롯한 이 땅의 미생들이 내일을 살아갈, 완생(完生)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을 버틸 힘을 주며 위로의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현실의 질감을 잘 살린 ‘미생’의 진정성의 리얼리티가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라면 ‘미생’의 따뜻한 휴머니즘은 미생들이 자신의 삶에 가치부여를, 내일의 희망을 갖게 할 힘을 주는 것이다.

전무에게 부당하게 일을 빼앗기고 더럽고 서러워 폭음을 해 변기통을 부여잡으면서 “당신들이 술맛을 알아”라는 대사에서 분노와 가슴 먹먹함의 동일시를 하다가도 “어떻게 든 버텨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 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길은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에 고달픈 하루를 털고 술 한잔에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다.

초겨울, 찬바람이 분다.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이 하나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온다. 소주한잔을 털어 넣으며 한 직장인이 말한다.“ ‘미생’처럼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이고 작은 일을 하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가정이, 회사가 그리고 사회가 잘 굴러가는 것 아니겠어!”이 풍경이 바로 2014년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미생’신드롬의 실체이자 의미가 아닐까. (KOGAS 12월호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배국남 기자 knba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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